[숙종] 강력한 조선의 왕권 구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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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 6. 4. 15:59
숙종이 이룩한 일들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조선의 제 19대 왕.
출생 1661년
재위기간 1674년 - 1720년
본명 : 이순
경제적인 분야로,
대동법을 전국에 시행하여, 민생의 안정을 도모하였고,
본격적인 주전, 화폐제조의 시대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숙종이 상평통보를 발행한 목적은 국가 재원의 확충이라는 목적이 큽니다.
이러한 숙종의 치세는 국가재정의 탄력성과 안정성을 기여했으며,
조선 후기 상품화폐경제의 발전에 기여하게 되었습니다.
숙종은 군주로써의 책임감이 강한 임금인지라,
민생에도 많은 관심을 쏟고, 백두산 정계비를 세움으로써,
국경을 바로 잡았습니다.
세 차례의 환국을 통해, 서인과 남인 세력의 균형을 잡고, 왕권을 강화하고자 하였습니다.
경신환국을 통해 남인들이 실각하고 서인이 등용하였으며, 집권당을 차지 하였습니다.
10여년 동안의 서인집권 이후, 또 한차례 환국이 일어나게 됩니다.
기사환국인데요. 기사환국을 통해 장희빈이 두각을 나타내며, 남인들이 집권하게 됩니다.
숙종이 장희빈이 낳은 왕자를 원자로 삼고, 곧이어 세자책봉까지 이어지게 되었는데,
이에 서인들이 반발이 무지 심했습니다. 이에 숙종이 크게 반발해, 대대적인 숙청을 단행했고,
서인들은 물러나고, 남인들이 집권하게 되었습니다.
숙종은 민심과 왕권 강화에 힘쓴 조선의 제 19대 임금입니다.
또 한차례, 갑술환국으로 희반장씨의 폐비와 서인의 재발탁이 일어나게 됩니다.
기사환국 때 장희빈이 문제였듯이, 갑술환국에서는 최무수리가 최숙빈으로 올라오면서,
남인들의 반발을 사게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장희빈이 중전에서 다시 빈으로 강등되었고,
물러나있던 서인들이 관직에 복귀하며, 주요 남인들이 처벌,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폐비였던 민씨는 다시 중전으로 복귀하게 되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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